유통상-대형마트 ‘입장차’…산란일자 표기 농가만 ‘우왕좌왕’
난각 산란일자 의무표기 시행 2주
유통상인, 보관기간 이유로 산란일자 찍힌 달걀 안 가져가 일부에선 가격할인도 요구
대형마트, 표기 달걀만 원해 산란 10일 이내만 납품받기도 생산날짜에 따른 서열화 우려
양계협회 “피해농가 제보 접수 정부에 해결책 요구할 계획”
난각(달걀 껍데기) 산란일자 의무표기가 시행된 지 2주가 지난 가운데, 우려했던 대로 현장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변경된 제도에 적응하도록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둬 농가들이 자율적으로 산란일자를 찍도록 했다. 하지만 유통상인(식용란수집판매업자)은 계도기간을 이유로 ‘산란일자 찍은 달걀은 안 받겠다’고, 일부 대형마트는 ‘산란일자 찍은 달걀만 받겠다’고 한다. 이에 농가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산란일자 미표기 요구에 막무가내 DC 갑질도=충남 홍성에서 산란계농장을 운영하는 이모씨(50)는 최근 거래하던 유통상인으로부터 “산란일자가 찍힌 달걀은 받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산란일자가 안 찍힌 달걀은 보통 전통시장이나 식자재업체에 납품하는데, 일자가 찍혀 있으면 자기들이 일정기간 보관할 시간을 벌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이씨는 “일자가 안 찍힌 달걀만 달라 하니 정부가 찍으라고 해도 찍을 수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일부 유통상인은 산란일자 의무표기 시행을 들먹이며 농민들에게 가격할인(디시·DC)을 요구하고 있다. 산란일자가 오래된 달걀은 소비자 외면을 받을 수 있기에 그로 인해 발생할 손실을 농가도 일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경기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정모씨(47)는 유통상인으로부터 2월말 기준 달걀 한개당 50원을 통보받았다. 대한양계협회가 경기도 산란계농가에 공시한 2월 달걀값은 한개당 60원인데, 이 금액에서 10원이나 깎인 값이다.
정씨는 “한개당 50원의 달걀값을 받고는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어 최근 3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산란일자 없으면 안 받는다는 대형마트=반대로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가들은 산란일자를 표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아직은 마트에서 산란일자 표기 달걀과 비표기 달걀을 섞어 팔고 있지만, 농가들에 산란일자를 반드시 표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대형마트에 달걀을 납품하는 경기 광주의 한 영농조합법인은 거래처로부터 산란 10일 이내의 달걀만 납품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또 다른 거래처에선 3일 이내에 생산된 달걀만 요구하기도 했다. 이 법인 관계자는 “산란일자를 찍으면 오래된 달걀은 안 받으려 해 농가들은 달걀값을 깎아서라도 내보내고 싶어한다”며 “똑같이 신선한 달걀인데도 날짜에 따라 서열이 생긴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산란일자 표기가 안된 달걀을 중심으로 할인판매도 실시 중이다. 재고 소진을 위해서다. 얼마 전 한 대형마트는 일정 금액 이상 장을 보면 달걀 10개를 100원에 주는 이벤트를 벌여 산란일자 표기가 안된 달걀을 제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산란일자 표기가 안된 달걀의 재고가 많아 당분간 섞어서 판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계도기간 동안 피해 본 농가들이 없는지 제보를 받아 면밀하게 파악한 후 정부에 해결책을 요구할 계획”이라며 “이달 중순부터 가칭 ‘계란 유통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농민신문 박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