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달걀 대량폐기할 수도…생산기반 붕괴 우려
[뉴스&깊이보기] 100일 앞으로 다가온 산란일자 표기 의무시행
유통기한 긴 만큼 산란일자 말고도 달걀 품질 영향 미치는 요인 다양
소비자, 산란일만 보고 구매 땐 품질 멀쩡한 달걀 버려질 수도
농가 “줄도산에 생산기반 무너지면 달걀 생산량 급감…결국 소비자피해”
냉장유통체계·GP 확충 지원 정책 우선돼야
달걀 산란일자 표기 의무시행일이 15일 기준으로 100일 남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초 개정한 ‘축산물의 표시기준’ 고시에 따라 양계농가는 2019년 2월23일부터 달걀 껍데기(난각)에 산란월과 일을 ‘△△○○’의 방식으로 표시해야만 한다. 이는 2017년 잔류허용기준(MRL) 초과 달걀(일명 살충제 성분 검출 달걀) 파동을 계기로 달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후속조치다.
하지만 산란일자 표기를 의무화하면 멀쩡한 달걀을 대량으로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지난해 10월 산란계농가와 달걀 유통상인들의 대규모 반대집회에 이어 올 10월 대한양계협회가 반대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효과보다 피해 더 클 수도=달걀은 대체로 상온에서 3주, 냉장상태로는 8주간 유통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긴 만큼 산란일자 외에도 달걀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소비자가 산란일자만 보고 달걀의 신선도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탓에 한때 난각에 산란일자를 표기했던 유럽도 소비자의 혼란과 유통상의 문제로 산란일자가 아닌 유통기한 표기를 법제화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효과가 불분명한 산란일자 표기 의무화를 예정대로 시행할 경우 적잖은 피해가 우려된다는 게 산란계농가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란일자가 신선도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오인할 소비자가 많을 수 있어서다. 소비자들이 최근에 생산된 달걀만 골라 구매하면 시일이 조금 지났을 뿐 품질이 멀쩡한 달걀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산자·소비자 모두 손해=이런 상황에서 산란일자 표기를 의무화하면 농가는 줄도산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농가 입장에서 매일 생산하는 달걀을 곧바로 출하할 수 없는 게 현실이어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농가는 유통상인이 올 때까지 달걀을 농장에 쌓아둔다. 연휴라도 끼면 유통상인이 방문하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져 달걀을 생산한 지 3~7일이 지나야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면 달걀이 소비자 손에 쥐어지기까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유통구조상 어쩔 수 없이 산란일자와 판매시점에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김재홍 양계협회 경영정책국장은 “아무 이상이 없는 달걀까지 헐값에 팔게 되면 많은 농가가 도산하게 될 것”이라면서 “생산기반이 붕괴돼 달걀 생산량이 급감할 경우 결국 소비자피해로 이어질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유통방식부터 선진화해야=산란계 업계는 콜드체인시스템(냉장유통체계) 구축이나 달걀유통센터(GP) 확충을 지원하는 정책부터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달걀 대부분은 상온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산란일자보다 유통방식이 달걀 품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고품질 달걀을 생산하더라도 유통과정에서 저온보관 상태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김 국장은 “달걀의 안전성을 높이려면 냉장유통체계 도입을 지원하고 달걀유통센터를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농민신문 윤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