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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6-04 00:00
박정희는 <초특급 황국신민>
 글쓴이 : 망나니 (211.♡.150.60)
조회 : 3,712  
[원본글] ----------------------------------- >전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였던 최상천씨가 쓴 >'알몸 박정희'(도서출판 사람나라)는 내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 시대를 발가벗긴 박정희의 내면, 박정희의 통치의 알몸 >을 그대로 드러냈다. > >[관련기사] ˝이순신은 조선의 사무라이?˝ > >최상천 교수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 >"박정희, 그는 근대화 혁명가인가, 1급 친일파인가, 독재자인가? >그러나 이 세 가지 얼굴은 박정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보아야 박정희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수 있다." > >그가 밝힌 천기누설에 대해 매스컴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이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지난번에 썼던 사무라이로 만들어진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은 요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었 >던 듯 하다. 그것은 아마, >'알몸 박정희'라는 책을 읽어보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모두들 아는 이야기라고 한다. 모두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왜 박정희 기념관의 건립은 추진되는 것일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사범학교를 나온 박정희는 문경보통학교의 교사생활을 3년동안 했다고 >한다. >당시 교사는 모든 것이 보장된 최고 직업이었다고 한다. >사범학교 출신이니 수재로 인정받고, 조선총독부에서 보장하니 실직 위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주민들이 '우리 선생님'이라며 더없이 존경하는 >그런 직업인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누나를 만날때마다 '죽어도 선생질 못해먹겠 >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보람과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교사생 >활이 죽기보다 싫었던 이유에 대해 최상천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 >"대장이 되고 싶은 박정희는 처음부터 교사자리가 마음에 없었다. >그러나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교사 역할이었다. >식민지 뒷수습이나 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 대장을 꿈꾸 >는 정복주의자가 꿈도 희망도 없는 조센징의 치다꺼리나 하고 있으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그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고 >한다. >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를 집어치우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박정희는 보통사람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서운 집념으로 식민지 조선사람이 꿈도 꾸지 못할 굳센 충성심 >으로 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신출귀몰한 방법을 실행했다고 한다. > >그것은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 혈서는 만주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초특급 황국신민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더러운 조센징 중에 >이런 진주가 숨어 있었다니, 교관과 생도들은 한동안 충격과 감동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충성혈서 한 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 >최 교수에 따르면 일제시대 35년간 자진해서 '충성혈서'를 쓴 조선사람은 >박정희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다른 조선 사람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로, 중국으로 조선을 떠날 때 >박정희는 혈서까지 쓰고 일본군 사관학교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래도 박정희를 한국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하고. > >1942년 3월 23일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서 >만계(식민지 출신으로 편성한 계열) 졸업생 240명 가운데 1등으로 졸업한다. >그는 이름도 이미 다카키 마사오로 바꿨다. 그는 명실상부한 니뽄징이 된 것 >이다. 그것도 보통 니뽄징이 아니라 최우수 제국군인이 된 것이다. > > >박정희는 일본육사로 진학한다. >일본육사는 일본제국 최고의 장교 양성기관이다. 이런 기관에 핏줄이 다른 >식민지 출신을 70명씩이나 받아들였다. >이들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 육사는 그들이 독립투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 >다. 문제의 70명은 일본제국이 무기와 독립운동자금을 대줘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을만큼 개조된 '일제인'이기 때문이다" > >일본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 > >담임의 기억속에 남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교장의 기억뿐만 아니라 공개적 >칭찬까지 받을 정도로 박정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더군다나 정통 '일제인' 양성을 자랑하는 일본 육사 아니던가? >박정희는 이것도 모자라 창씨개명한 이름을 버리고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개칭한다. > >1944년 4월 20일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그해 7월 >열하성에 주둔하고 있는 만주군 제 8단에 배속되었다. >이때의 박정희에 관한 증언이 있다고 한다. >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시오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은 다카키 마사오와 함께 지냈던 만주군장교 출신의 이야기 이다. > >"다카키 마사오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 >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 >그 정도로 박정희의 '조센징 토벌' 의지는 강력했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의 조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과 공격욕구에 대해서 >는 '알몸 박정희'를 전체적으로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조센징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오심만큼은 확실했던 듯하다. > > >하니리포터 지승호 기자 triana@freechal.com http://www.freechal.com/sibi > >편집시각 2001년08월30일16시45분 KST > ----------------------------------- [답변글] 죄의 근본은 그사람의 네면의 세계에있는것이 아닐련지 어릴때 한번 잘못 한일들은 평생을 괴롭히지요 마 .......각설하고 그사람을 평가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우메한 편일것이다 아무데서나 특별한 분이였으니까 그리고 우리를 잘살게하신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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