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6-05 00:00
글쓴이 :
영웅 (61.♡.3.57)
조회 : 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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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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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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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였던 최상천씨가 쓴
>>'알몸 박정희'(도서출판 사람나라)는 내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 시대를 발가벗긴 박정희의 내면, 박정희의 통치의 알몸
>>을 그대로 드러냈다.
>>
>>[관련기사] ˝이순신은 조선의 사무라이?˝
>>
>>최상천 교수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
>>"박정희, 그는 근대화 혁명가인가, 1급 친일파인가, 독재자인가?
>>그러나 이 세 가지 얼굴은 박정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보아야 박정희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수 있다."
>>
>>그가 밝힌 천기누설에 대해 매스컴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이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지난번에 썼던 사무라이로 만들어진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은 요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었
>>던 듯 하다. 그것은 아마,
>>'알몸 박정희'라는 책을 읽어보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모두들 아는 이야기라고 한다. 모두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왜 박정희 기념관의 건립은 추진되는 것일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사범학교를 나온 박정희는 문경보통학교의 교사생활을 3년동안 했다고
>>한다.
>>당시 교사는 모든 것이 보장된 최고 직업이었다고 한다.
>>사범학교 출신이니 수재로 인정받고, 조선총독부에서 보장하니 실직 위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주민들이 '우리 선생님'이라며 더없이 존경하는
>>그런 직업인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누나를 만날때마다 '죽어도 선생질 못해먹겠
>>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보람과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교사생
>>활이 죽기보다 싫었던 이유에 대해 최상천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
>>"대장이 되고 싶은 박정희는 처음부터 교사자리가 마음에 없었다.
>>그러나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교사 역할이었다.
>>식민지 뒷수습이나 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 대장을 꿈꾸
>>는 정복주의자가 꿈도 희망도 없는 조센징의 치다꺼리나 하고 있으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그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고
>>한다.
>>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를 집어치우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박정희는 보통사람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서운 집념으로 식민지 조선사람이 꿈도 꾸지 못할 굳센 충성심
>>으로 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신출귀몰한 방법을 실행했다고 한다.
>>
>>그것은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 혈서는 만주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초특급 황국신민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더러운 조센징 중에
>>이런 진주가 숨어 있었다니, 교관과 생도들은 한동안 충격과 감동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충성혈서 한 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
>>최 교수에 따르면 일제시대 35년간 자진해서 '충성혈서'를 쓴 조선사람은
>>박정희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다른 조선 사람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로, 중국으로 조선을 떠날 때
>>박정희는 혈서까지 쓰고 일본군 사관학교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래도 박정희를 한국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하고.
>>
>>1942년 3월 23일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서
>>만계(식민지 출신으로 편성한 계열) 졸업생 240명 가운데 1등으로 졸업한다.
>>그는 이름도 이미 다카키 마사오로 바꿨다. 그는 명실상부한 니뽄징이 된 것
>>이다. 그것도 보통 니뽄징이 아니라 최우수 제국군인이 된 것이다.
>>
>>
>>박정희는 일본육사로 진학한다.
>>일본육사는 일본제국 최고의 장교 양성기관이다. 이런 기관에 핏줄이 다른
>>식민지 출신을 70명씩이나 받아들였다.
>>이들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 육사는 그들이 독립투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
>>다. 문제의 70명은 일본제국이 무기와 독립운동자금을 대줘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을만큼 개조된 '일제인'이기 때문이다"
>>
>>일본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
>>
>>담임의 기억속에 남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교장의 기억뿐만 아니라 공개적
>>칭찬까지 받을 정도로 박정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더군다나 정통 '일제인' 양성을 자랑하는 일본 육사 아니던가?
>>박정희는 이것도 모자라 창씨개명한 이름을 버리고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개칭한다.
>>
>>1944년 4월 20일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그해 7월
>>열하성에 주둔하고 있는 만주군 제 8단에 배속되었다.
>>이때의 박정희에 관한 증언이 있다고 한다.
>>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시오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은 다카키 마사오와 함께 지냈던 만주군장교 출신의 이야기 이다.
>>
>>"다카키 마사오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
>>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
>>그 정도로 박정희의 '조센징 토벌' 의지는 강력했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의 조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과 공격욕구에 대해서
>>는 '알몸 박정희'를 전체적으로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조센징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오심만큼은 확실했던 듯하다.
>>
>>
>>하니리포터 지승호 기자 triana@freechal.com http://www.freechal.com/sibi
>>
>>편집시각 2001년08월30일16시45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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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글]
>죄의 근본은 그사람의 네면의 세계에있는것이 아닐련지 어릴때 한번 잘못 한일들은 평생을 괴롭히지요 마 .......각설하고 그사람을 평가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우메한 편일것이다 아무데서나 특별한 분이였으니까 그리고 우리를 잘살게하신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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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글] 미친놈 세상을 항상 긍정적으로 좀 봐라
미친놈은 저보다 잘살는사람 저 보다 잘난사람이
모두가 미워보이는거라
그래서 괜히 어쩌구 저쩌구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영웅 박정희님을 욕 뵈지말라 미친기야 알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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