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란계농가의 눈물 “정부 믿었더니 살 길 막막”
닭 모두 묻고 보상금 40%만
산정기준 개별입증으로 변경
그나마 시세는 발생 전 가격
발생 책임 과도한 과태료까지
재입식 위한 은행대출은 필수
이 와중에 정부는 계란 수입
“지난해 12월 28일 농장에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키우던 닭을 모두 땅에 묻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살처분 보상금은 40%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일손을 내보내면 다시 인력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어 외국인 부부의 인건비는 매달 350만 원씩 계속 나가고 있구요. 닭을 재입식하기 위해 융자도 받았지만 올 겨울 또다시 AI가 발생할까 두렵기만 합니다.”
지난 22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만난 김태우 씨(44)는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피켓을 들고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태우 씨는 이날 ‘산란계 살처분농가 생존권 보장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청와대 광장 한편에 섰다. 김 씨는 “고병원성 AI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했지만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살처분 보상금 탓에 도산 위기에 놓였다”며 “이같은 우리 농가들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시위에 동참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양계협회와 살처분 산란계농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29일부터 100일 가까이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는 김태우 씨도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18 년간 산란계를 키워온 거창농장 김태우 씨도 지난겨울 발생한 고병원성 AI를 피할 수 없었다. 김 씨는 “AI로부터 내 농장의 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AI가 확진되는 순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닭을 묻고 주변 농가들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전화를 돌리며 계속 닭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금전적인 문제다. 지난 2018 년 살처분 보상금 산정기준이 개정되며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통한 농가 개별입증 방식으로 변경된데다 보상금 산정기준도 현 시세가 아닌 고병원성 AI 발생 전월 평균 시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농가에 방역의 책임을 물어 과도한 감액과 함께 과태료까지 부과하다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 씨 역시 역학조사 과정에서 3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돼 보상금의 30%가 삭감됐다. 억울한 마음에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시와 관계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떠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살처분 보상금이 전국 평균 30%밖에 지급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김 씨는 “지자체별로 다르지만 적게는 5%부터 많게는 50%까지 지급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자체에 전화해도 돈이 없다는 말뿐”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입식도 쉽지 않다. AI 발생 전 마리당 3500원 수준이던 중추값은 7000~8000원을 호가하고 있는데, 보상금은 대폭 삭감된데다 이마저도 반절 조차 못 받은 까닭에 돈을 구할 길이 막막하다. 그는 “다음 달 중순경 입식 예정이다. 90일령 산란계 중추 2만6500마리 입식을 위해 2억2500여 만원이 필요한데 현재 보상금은 1억도 채 받지 못 했다”며 “중추값 외에도 입식비, 사료값 등 최소 1억 원 이상이 더 필요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사료값 등 계란 생산을 위한 거의 모든 제반 비용이 상승한 상태다. 특히 사료값은 하반기에 한 차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돼 올해 하반기와 내년 초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고민이 크다.
김태우 씨는 “이같은 상황에서 수입계란에 돈을 퍼주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정부는 계란수입 대신 산란계농가들의 조속한 경영 안정을 위해 힘 써달라”고 호소했다.[축산경제신문 김기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