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그러들지 않는 계란산업 병폐 '후장기' 거래
계란가격 고시價 현실화…합리적 유통체계 만들어야
지난해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 이후 산란계 입식이 증가하면서 계란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계란가격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다. 여기에 계란유통 과정에서 D/C와 월말 정산 방식인 이른바 ‘후장기’ 거래가 성행하고 있어 계란 생산농가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계란산업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하고 있는 후장기 거래를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 벼랑 끝의 산란계 농가
계란 생산농가들은 도산위기를 맞고 있다. 수개월째 계란 고시가격이 생산비 이하로 유지되고 있는 데다 계란 유통상인들의 D/C와 후장기 거래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장기 거래란 계란 가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란을 우선 출하하고, 월말에 결정된 가격으로 정산을 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후장기 거래는 월말에 정산되기 때문에 계란가격에 D/C가 반영, 통상 고시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계란가격이 책정된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계란 농장의 수취가격은 특란 개당 65원으로 계란생산비 112원의 절반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다. 여기에다 지난달에는 유통상인들이 계란 고시가격과는 무관하게 일제히 20여원을 낮춰 거래키로 결의하는 등 D/C 폭이 커지면서 농장의 경영악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게 생산농가들의 설명이다.
경기도의 한 산란계농가는 “후장기는 지금과 같이 계란이 과잉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란이 부족할 때도 발생하는 등 이미 고착화된 거래방식”이라며 “후장기를 거부할 경우 거래가 중단될 수도 있어 계란을 출하하면서도 당일 판매가격 조차 알지 못한 채 유통인들이 정해주는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가격고시 방법 변경·공정위 제소도 검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계협회는 후장기 거래 근절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22일부터 양계협회는 수도권 지역 173농가를 대상으로 실거래 가격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계란 고시가격을 현실화해 농장 수취가격과 차이를 줄여 보다 투명한 유통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양계협회는 계란 유통인들에게 후장기 행위를 포함한 일체의 불공정행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며, 만약 후장기 거래가 지속될 경우 유통상인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상인들간 계란 할인가를 정하는 것은 엄연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농가들에게 반드시 유통상인들로부터 거래명세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당부하고 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계란 유통인들은 당장 후장기 행위를 포함한 일체의 불공정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계란 생산농장을 사지로 몰아넣는 이러한 횡포가 근절되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GP센터 건립 등 제도적 지원 뒤따라야
이와 함께 계란유통 투명화를 위해선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란 과잉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가들만의 힘으로는 거래 교섭력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로 GP(계란유통)센터가 지목되고 있다. 권역별로 GP센터를 구축, 이곳을 반드시 거쳐 거래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계란 유통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재 전체 계란유통 물량 가운데 GP센터를 통한 비중은 45% 수준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축산업계는 모든 계란이 선별포장업을 경유해 유통토록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신용란 선별포장업’을 신설하는 등 법제화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계란유통상인의 농가방문 거래를 금지하고 식용란 선별포장업체를 통해서만 계란을 유통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는 “GP센터를 통한 계란 거래가 이뤄진다면 계란 가격 결정체계가 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고병원성 AI의 수평전파도 막을 수 있다”며 “다만 GP센터 활성화를 위해선 법의 의무화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농수축산신문 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