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장 ‘극한직업’…주52시간 근무제 부작용 속출
청년 일손 부족한 지방도시
인력 늘리려 해도 노인밖엔…
수당 메리트 사라져 퇴사도
워라밸 < ‘가장의 무게’
노동정책, 업종 특수성 녹여야
[농축유통신문 김재광 기자]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두고 닭고기 업계에 연이어 불어 닥치는 악재가 닭고기 기업들을 탈진 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공정위 육계수급조절 담합 조사에 이어 최저임금상승과 주52시간 근무제라는 노동정책의 변화로 육계계열업체들의 경영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은 줄어드는 근로시간만큼 고용을 늘리고 여가생활·자기개발·육아 등 저녁이 있는 삶 즉,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 워라밸은 “달콤한 것 같지만 쓰린 맛이 있다”며 줄어드는 임금과 가장의 무게에 대한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초복을 앞두고 소비 성수기 작업이 이제 막 한창인 닭고기 기업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지방에 위치한 도계장들은 구인난이 극심해 타 지역에서 대절버스로 충원인력을 수송해야 할 지경이다.
이른바 대표적 3D 기피업종으로 꼽히는 도축장 근무는 4D직군으로 범위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Dirty(더럽고), Difficult(어렵고), Dangerous(위험한) 3D에서 Distant(먼거리)가 추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무거워지는 가장의 무게
흔히 ‘3D 업종’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피업종의 대명사로 일컬어 진다. 많은 이들이 취업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소위 ‘3D 업종’은 피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일하며 돈 벌긴 싫다는 것인데 3D업종의 고정관념을 초월하는 게 ‘가장의 무게’다.
3D 산업의 인력난은 직업환경에 비해 임금이 높지 않을 경우에 한정된다. 그러나 주요 닭고기 기업에 종사하는 도계장 직원들은 잔업·특근 등 시간외 수당 등으로 준수한 임금이 근로인구를 지탱하고 있다. 워라밸 바람으로 출발한 이번 주52시간 근무제가 기업과 생산직 근로자들에게도 반갑지만은 않는 모습들이 포착된다.
최근 퇴사한 A육계계열사 근로자는 “아직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지 않는 300인 이하 회사로 이직하려고 퇴사를 결정했다”며 “아이들에게 지출되는 고정비용과 생계비를 생각하면 줄어드는 월급으로는 생활유지가 어렵다”고 전했다.
B 육계계열사 생산직 여성의 한달 실수령 급여는 250만원 중반대다. 그러나 다음달 급여통장에는 약 30만원 이상이 줄게 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숙련된 여성 노동인구가 많은데, 기존 직원 사이에서 나오는 임금보전 요구가 애로사항이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여름엔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근무시간을 늘리고 비수기엔 줄이는 게 표면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비수기에 줄어든 급여에도 잔업은 잔업대로 해야 할 텐데, 농촌인력 이탈이 가속화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농업 인력 현실 도외시
여름철 성수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24시간 풀가동에 돌입하는 닭고기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닭고기 시장에서 상위 점유율을 보이는 하림, 참프레, 동우팜투테이블, 사조화인코리아 등은 전라도에 몰려 있다. 전북 익산에 위치한 하림의 경우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신규 채용해야할 인원은 총 약 200명. 여름철 소비 특수 기간에 활용할 인력까지 합하면 약 470여명의 채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근 지역에 위치한 참프레, 동우팜투테이블도 성수기와 비수기 충원이 필요한 인원은 각각 330명과 263명. 그러나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농촌사회는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육계계열업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림 기획조정실 송기택 수석부장은 “지방 도시에서 한 번에 470여명을 채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계절과 농촌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행 3개월 이내로 제한된 탄력근무제 기간을 6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줘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전했다.
하림과 참프레, 동우팜투테이블 등은 정규직 신규 채용을 늘리면서 이번 여름철 닭고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호남지역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적극 채용해 버스대절로 수송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구인 반경 또한 중첩되는 지역군이어서 인력수급 각축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경기권에 위치한 마니커의 경우 호남지역에 몰린 닭고기 기업들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마니커 관계자는 "동두천 공장이 경기권이라서 호남지역에 비해 인력 충원 문제는 그나마 나은편이다"면서도 "신규 충원이 쉽지 않은 분위기는 마찬가지다"며 "기존 핵심 기술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을 보전해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이다"고 밝혔다.
◆ 도미노 손해… 농가-치킨-소비자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 부작용은 기업과 근로자, 육계 사육농가까지 여파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소·돼지와 달리 도계와 동시 미생물 번식이 활발하게 시작되는 닭고기는 신선도 유지에도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주말 근무가 사라질 경우, 금요일 상차 및 도계 작업 물량을 끝으로 주말 작업량을 확보하거나 미뤄야 한다.
금요일에 상차될 닭들이 월요일까지 농장에 더 머무름으로써 사료비용이 추가되고 정해진 호수에 맞지 않은 증체된 닭이 출하돼 상품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해진 호수에 도달하는 일령과 사료요구율(FCR)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출하지체는 회전수에도 영향을 미쳐 농가 수익도 줄게 된다.
또한, 주말 소비 비중이 큰 치킨프렌차이즈에도 주말 공급물량을 미리 주중에 운송해 줘야 하는데, 주말물량을 채워 놓을 규모의 물류창고가 준비되지 않은 실정이다.
한 육계계열업체 관계자는 “닭고기의 최대 유통기한 9일을 초과하는 것도 아니고 마트의 냉장시스템도 잘 돼 있지만 통상 마트에서 1~2일 전 제품화된 닭들을 구매했던 소비자들이 최대 4~5일 지난 닭고기를 장바구니에 넣을 것인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 “도계업 특수성 살펴달라”
닭고기 기업을 비롯한 식품·유제품 등 농식품 산업 현장 전체가 대혼란 상황을 맞이한 가운데 업종의 특수성에 따른 대책이 요구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하락이 큰 애로사항이지만 궁극적으로 최저임금 후폭풍처럼 국민생활 전반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근로자와 소비자 그리고 농업을 지탱하는 축산업 위기론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계열화사업자들은 종계·부화·사료·사육·도축·가공·물류·영업 등 농식품의 생산과 소비 유통 모든 영역을 통합해 경영하는 형태를 보여 300인 이상 기업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중 하림, 참프레, 마니커, 동우팜투테이블, 올품, 체리부로 등 6개 업체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하 및 자본금 80억원이상으로 특례고용허가제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막혀있다.
C육계계열사 대표는 “모든 기업들의 애로를 생각하면 노사 합의하에 최장 3개월 간 탄력근로시간제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을 1년 이상 늘려줘야 한다”면서도 “도계업은 6~8월 성수기만큼은 근로시간 단축 예외를 허용해주거나 특례고용허가제에 포함되도록 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농축유통신문 김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