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소비자물가 1년새 두자릿수 폭등
일주일치 장보기 10만원 훌쩍…주부들 한숨만
사교육비 부담 가장 커…가계부 온통 '빨간색'
주부 이은정(36·서울 성북구 안암동)씨는 요즘 장보기가 겁난다. 예전에는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식품을 사는 데 7만∼8만원이면
충분했지만 요즘은 10만원이 넘는다. 물건을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놀라서 내려놓는 일도 많아졌다. 꼼꼼히 가계부를 쓰는 알뜰 주부인
이씨는 지난해 초 가계부와 요즘 가계부를 펼쳐놓고 견주다 한숨만 내쉬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3.9%만
올랐다는데, 이씨의 가계부에 생생하게 적혀 있는 생활물가는 뚜렷한 두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먼저 아이들 간식인 부침개용 밀가루가 지난해 2월에는 3㎏짜리 한 봉지에 3000원이었는데 4800원으로 뛰었다.
두 마리에 5000원이었던 닭고기는 8000원이 됐다.
서른 개들이 달걀 한 판은 30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다. 동네시장 가게의 두부도 한 모에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아이들 국거리용으로 한 달에 한 번쯤 사는 한우 쇠고기는 한 근에 1만원이 올랐다. 더구나 앞으로도
주스·우유·과자·아이스크림 등 아이들이 즐겨 먹는 먹거리 값이 줄줄이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이씨는 "먹거리 물가가 이렇게 오르니 옷이나 신발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자주 안 사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 간식도 줄였다. 이씨는 "이전에는 아이들한테 닭튀김을 자주 해줬지만 요즘 닭 값이 올라 그렇게 못 해준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아이들 사교육비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해야 할 사교육 종류가 늘어나는데다 연초 들어서는 학원비가 돌아가면서 오르고 있다.
둘째인 아들(6)의 유치원비는 지난달까지 25만원이었는데 이번달부터 30만원으로 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의 미술학원비도
지난 1월부터 7만원에서 9만원으로, 피아노학원은 2월부터 8만원에서 9만원으로 올랐다. 국어와 수학 학습지도 3월부터 과목당 2천원씩
올린다고 통보가 왔다.
하지만 진짜 큰 건은 따로 있다. 바로 '영어 교육비'다. 이씨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 몰입교육 발표가 나온 뒤 아파트 아줌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며 "기존에 보내던 집들도 하나 더 보낸다고
하는데, 첫째 아이를 한 군데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화 위주 교육을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알아보니, 가장 싼 학원도 한 달에 24만원(일주일 세 번 수업)이나 한다. 이씨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영어교실에 보내본
적이 있는데, 원어민 교사가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서른 명이나 돼 제대로 수업이 안 되는 것 같았다"며 "3월부터는 무리가 되더라도
사설학원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사원인 이씨 남편의 한 달 월급은 상여금까지 합쳐도 25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사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빌린 대출금
상환에만 한 달에 43만원이 나간다. 나머지 200만원에서 아이들 사교육비로 80여만원, 나머지 돈으로 식비, 관리비, 남편 용돈까지
쓰고 나면 저축은 꿈도 꿀 수가 없다.
마이너스 통장 액수는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와 교육비로 이씨의 가계부는 온통 빨간색이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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